1995년 12월, American Airline 965편은 미국의 마이애미를 이륙하여 콜럼비아의 칼리로 예정대로 정상 운항하고 있었다. 이 보잉 757 항공기의 조종사는 착륙하기 위해 공항에 접근하면서 다음 무선 내비게이션 위치로 'ROZO'를 선택하게 되어 있었다. 그는 내비게이션 컴퓨터에 'R'을 입력했고, 컴퓨터는 항로 상에서 'R'로 시작하는 인근 위치들의 목록을 보여주었다. 조종사는 목록에서 위도와 경도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 첫 번째 위치를 선택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종사는 'ROZO' 대신 북동쪽으로 132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ROMEO'를 선택하고 말았다. 남쪽으로 날고 있던 비행기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계곡 안으로 하강하고 있었기 때문에, 좌우 방향으로 항로를 이탈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비행기 조종사는 내비게이션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동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고, 비행기는 1만 피트 상공에서 화강암 산봉우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탑승 중이던 152명의 승객과 8명의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으며, 4명의 승객만이 중상을 입은 채 구조되었다. 국립 운송 안전 위원회가 사고 조사를 벌였고, 언제나 그렇듯이 사고 원인은 인간의 실수였다고 결론지었다. 조종사가 따랐던 내비게이션 장치는 문제가 없었으며, 그건 단지 '칼리'로의 착륙 절차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조종사가 위치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인간의 실수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결코 조종사만의 실수가 아니었다.

항공기에 설치된 내비게이션 컴퓨터의 전면 계기판은 현재 선택된 내비게이션 위치와 항로의 이탈 범위를 보여준다. 항공기가 정상 항로에 있으면 계기판의 바늘이 중앙에 위치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바늘은 선택된 무선 항로의 위치가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는다. 착륙 직전이나 충돌 직전이나 계기판의 모양은 다를 바가 없다. 컴퓨터는 조종사에게 그가 선택한 항로로 정확하게 운항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항로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 커다란 불행을 가져왔다.

비주얼 베이직의 아버지, 앨런 쿠퍼가 지은 책의 맨 앞에 나오는 문단이다. 앨런 쿠퍼는 잘못된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 글을 읽으니 김창준님의 "자신의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 수 있습니까"라는 글이 생각난다. 또, 예전에 NASA에서 쏜 인공위성인가 뭔가가 날아가는 도중에 0으로 나눗셈을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CPU가 뻗어버리고는, 우주 저편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잘못된 프로그램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는 표현은 허구만은 아니다.) 만약 나라면.. 내가 짠 프로그램이 비행기에 탑재된다면.. 난 그 비행기는 안 탄다. -_-


p.s. 책 내용은 이런 것들과는 상관없고, 점점 습득하기 어려워져가는 잘못 만들어지고있는 인터페이스들과, 인터랙션 디자인에 대해서 (굉장히 공감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직 1/5밖에 못읽어서, 리뷰(서평)은 (끝까지 본다는 가정 하에)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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