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argue
2009/02/03 01:21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조금씩 읽고 있다.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넌 이걸 꼭 봐야돼”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지나간 내 모습들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곱씹을 내용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특별히, 두 파트를 인용하고자 한다. 여기에 적어놓고 매일매일 되새김질 해야겠다.
거의 언제나 논쟁은 양측 참가자 모두가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난다.
논쟁으로는 이길 수 없다. 지면 그냥 지는 것이고, 이겨도 지는 것이다. 왜 그런 것 같은가? 만일 여러분이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지적해 상대방을 묵사발 낼 정도로 이겼다 치자. 상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냈다고 치자.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여러분 기분이야 좋겠지만 상대방은 어떻겠는가? 여러분은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상대방은 여러분의 승리에 이를 간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승복한 사람은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A man convinced against his will is of the same opinion still.)펜 상호생명보험사는 보험 판매원들에게 명확한 기준 하나를 제시해 지키게 하고 있다.
“논쟁하지 말라!” (Don’t argue)
아래 문단은 다른 파트이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 부분은 논쟁 자체에 관한 내용이라면, 뒷 부분은 상대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입견과 편향된 생각을 갖고 있다. 미리 갖고 있던 관념, 질투, 의심, 공포, 시기, 자부심 등이 대다수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나 헤어스타일, 아니면 공산주의나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일 다른 사람에게 “틀렸소”라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매일 아침 식전에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아래 구절을 읽기 바란다. 제임스 하비 로빈슨 교수의 지혜가 담긴 책 “정신의 형성”이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다.
우리는 가끔 아무런 저항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남에게서 틀렸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지적에 반감을 품고 생각이 더 굳어진다. 우리는 신념의 형성과정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신경하다가도 누군가 그 신념을 빼앗으려 하면 그 신념에 쓸데없이 집착하게 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분명 사고 그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우리의 자존심이다. ‘내 것’이라는 간단한 말이 인간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이 점을 잘 헤아리는 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다.
‘내’ 식사, ‘내’ 개, ‘내’ 집, ‘내’ 부모, ‘내’ 조국, ‘내’ 종교, 어느 경우나 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시계가 빠르거나 늦거나 혹은 차가 고물이다라는 말에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성에 운하가 있느냐, 에픽테토스를 어떻게 발음하느냐, 살리신(해열진통제)이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느냐, 사르곤 1세가 살던 시기는 언제냐 등과 같은 개념이 틀렸다는 말을 들을 때도 화를 낸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것을 계속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믿는 것에 의문을 던지면 분개하면서 예전의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인다. 이런 결과 이른바 논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대로 계속 믿기 위한 논리를 찾는 과정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하면, 논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 의사를 전달할 더 나은 표현방법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틀렸다는 표현 자체가 틀렸는지도 모르겠지만.
-- 이상한 나라의 종텐.

